수출기업 피해·내수 침체로 이어져
"정부 리더십 공백 해소 우선" 조언
국내 통상 전문가들은 한국에 대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26% 상호관세율' 부과에 대해 "협상의 시작점"이라며 민관 합동 혹은 한일 연합 대미투자 패키지를 모색하는 등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큰 얼개를 풀어야 하는 만큼 한국의 정부 리더십 공백 해소가 우선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자유무역 체제의 종언"
여한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현 피터슨국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3일 "트럼프 대통령이 톱다운 방식(정상회담)을 선호하는 만큼 일대일 정상 간 대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 전 본부장은 "한국의 정치상황 안정이 우선돼야 할 것이며, 이와 동시에 민관 합동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계 통상 전문가인 최병일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현재 대미 아웃리치(대외 소통·접촉)는 개별기업과 정부부처가 각개전투 식으로 진행돼 시너지가 없다"며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열심히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얻어내지 못하는 시나리오는 피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날 오전 5시께 전 세계 주요 국가를 대상으로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했다. 중국(34%), 유럽연합(20%), 베트남(46%), 대만(32%), 일본(24%)에 각각 관세를 부과하고 한국산에도 26%의 관세를 매겼다. 여 전 본부장은 이는 "지난 13년간 한국이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파트너이자 최근 몇 년간 대미 외국인직접투자(FDI) 1위 투자국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고 지적했다. 같은 아시아 FTA 국가인 호주나 싱가포르에 비해서도 과도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국내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조치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향후 주요국들이 미국에 대해서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미국이 재보복관세를 부과하는 악순환이 만약 나타난다면 수출이 상당히 중요한 우리 기업들에는 굉장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고 글로벌 각지에 생산거점을 두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도 예상된다. 이번 상호관세 품목에서는 빠진 반도체·의약품 업종도 향후 품목별 관세에서 고율관세를 맞을 경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기업 입장에선 당장은 공급망을 조정하거나 국내에서 비용을 조정하거나 단기적으로는 관세영향을 최소화해야 할 것 같다"고 분석했다.
■"각개전투 말고 민관협력해야"
예상보다 더 가혹한 조치이지만, 국내 기업들이 충분히 살길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허 교수는 "한국은 한미 FTA를 통해서 낮은 지금 관세를 받고 있기에 거기에 26%를 더해도 경쟁구도에서 결코 불리하지 않다"며 "협상 테이블에 올릴 카드의 우선순위들을 정부에서 면밀하게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에 소구할 수 있는 카드를 마련하는 것도 급선무다. 정철 한경협 연구총괄대표 겸 한국경제연구원장은 "미국에서 먼저 조선업 분야 협력 제안이 온 만큼 한미 관계의 특수성을 미국에 잘 알려야 한다"며 "미국 내 싱크탱크 등 미국인의 목소리를 통해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미국 사회에 잘 각인시킬 수 있는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조선, 방위, 원전, 액화천연가스(LNG), 반도체, 철강 등 한국의 제조업 기반이 미국의 국가안보적 위기상황 극복에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해 한국이 '스페셜 파트너'로 달리 평가받을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국가들과의 긴밀한 협력도 중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여 연구위원은 "한국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일본, 대만 등 아시아 동맹국들과 미국 협상에 있어 협력하고 필요하면 리스크를 분담할 수 있는 공조체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인원 고려대 명예교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고, 올해 한국에서 개최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 각국과의 공조 협력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전했다.